2003년 최악의 사건 대구 지하철 참사 가슴아픈 마지막 문자내용(+당시상황 사고 후유증)
2020년 11월 4일 오후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79회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전문가,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 법치의학자와 법의조사관, 미세증거 전문가, 화재 감식 전문가 등이 출연했습니다.
이날 유재석과 조세호는 박남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을 만났습니다. 그는 30년 동안 화재 현장에서 발화의 원인을 찾는 화재 감식 전문가로서 활약했습니다.
이어 박 원장은 가장 기억에 남은 현장으로 대구 지하철 참사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준비 요원으로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던 때 ‘큰 불이 났다. 내려라’라는 말을 들었다. 그게 바로 대구 지하철 참사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금 그 당시 상황이 화제가 되고있습니다. 17년이 지난 지금 2003년 얼마나 끔찍한 사고였을까요?
대구 지하철 참사는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입니다.
대한민국의 건축 안전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바꾸었다면, 대한민국의 철도 안전은 이 사건 이후로 크게 달라지게 됩니다. 최소한의 화재라도 번지지 않기 하기위해 당시 대한민국의 전동차 내장재를 모두 불연재로 대수선하였고, 심지어 롤지마저 종이란 이유로 LED로 교체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전의 대한민국 전동차의 내장재는 현재도 사용중인 도쿄,오사카메트로의 차량 사양과 비슷했다고 보면 됩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도한 연합뉴스의 유일한 1보 기사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라는 말만 봐서는 흔하디 흔한 단순 화재같아 보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철도 관련으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기록한 사고로, 192명이 사망했습니다.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326명이 사망한 남영호 침몰사고, 304명이 사망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다음으로 많습니다. 이것은 191명이 사망한 대연각호텔 화재보다 많습니다. 1995년에 289명이 사망한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벌어진 지하철 화재 사망자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지하철 화재 희생자를 낳은 불미스런 비극이자 216명이 살해당한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사고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살인사건입니다. 이 참사가 하필이면 유동인구가 많은 봄 방학 기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더 커졌습니다.
당시 끔직한 사건의 사건 발생은 김대한이란 사람으로 시작됩니다.
뇌졸중으로 인한 반신불수와 심한 우울증을 앓던 김대한(당시 56세)이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다 자살을 하기 위해 9시 30분 경,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에 있는 송현역에서 1079열차 지하철에 올라탔습니다.
9시 53분 경, 그는 성내동 중앙로역에서 열차가 서행하자 미리 들고 있던 석유 플라스틱 통에 불을 붙였습니다. 불이 그의 옷에 옮겨붙자 놀란 김씨는 휘발유통을 바닥에 던졌고, 결국 수 초만에 큰 불이 발생하였습니다.
다행히 당시 1079열차는 중앙로역에 정차 중이었고 많은 승객들이 열려 있던 출입문을 통해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1079열차에서는 비교적 큰 피해가 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1079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이 119로 신고를 했습니다.
1079열차 기관사는 초기 진화에 실패하자 중앙사령실에 신고하지 않은 채 대피했고, 결국 이로 인한 지하철 사령실의 오판으로 9시 55분에 원래 역을 통과해야 했던 1080열차가 중앙로역 반대편 선로에 정차했습니다.
게다가 중앙사령실에서 119에 신고를 늦게 했고,(중앙로역 역무원이 신고를 한 시각이 사고 4분 후인 9시 57분이였습니다) 1080열차 기관사가 출입문을 열어주었지만, 이후 마스터 콘트롤 키를 뽑고 탈출하였습니다. 기관사가 일부러 마스터키를 뽑고 탈출한 것이 아니고 사령실의 지시였습니다.
1080열차 기관사는 역사내 연기로 인해 1079열차에 불이 붙은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지하철은 가연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배웠기에(불량 내장재로 인해 화재가 커졌다) 이렇게 심각한 화재였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였기에, 1080열차 기관사는 사후 안전 관리 문제로 금고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금고 5년형을 받은 기관사는 2008년 출소 후 설령 그 때로 돌아간들 다시는 전동차에 오르지 않을 것임을 밝혔습니다.
사건 확대의 원인으로는 다음 내용들이 꼽힙니다.
●마스터키가 뽑히는 바람에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당시에는 비상시 문을 수동으로 열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갇힌 사람들이 많았다. 지하철 문은 보통 문 옆 의자 아래나 벽면에 있는 뚜껑을 열고 그 안의 레버를 당기면 손으로 열 수 있는데, 사고 전에 이 방법이 시민들에게 홍보가 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레버 위치와 사용법에 대해서 아주 조그맣게 써놨기 때문에 관계자나 철덕, 지하철 타면서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들었다.당시에는 비상레버 사용법이 지금처럼 전동차 문짝과 의자 옆면에 크게 적혀있지 않았고 레버 주변에만 작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2003년 당시에 국내에서 운용되던 전동차들은 유압식 문으로, 밸브 코크가 모두 의자 밑에 위치해 있어서 진짜로 방법을 아는 사람 아니면은 문 여는 비상코크가 어디있는지 아는 사람도 드물었고 공기가 모두 빠지기 전까지 몇 초 정도의 대피 지연이 불가피했다.
참사 이후 이런 심각한 문제가 지적 받으면서, 이후엔 개방 레버가 출입문 바로 옆으로 옮겨지고 전자식 도어의 보급이 확산됐다. 하도 홍보를 많이 해서 이제는 지하철 문과 스크린 도어를 수동으로 열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방화 셔터가 일찍 닫히면서 나오려던 사람들도 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화재가 난 1079열차에 비해 훨씬 많은 인명피해가 1080열차에서 발생하였다. 물론 방화 셔터에는 화재가 발생한 쪽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닫히는 경우를 대비해 문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자주 이용하는 역이든 아니든 평소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 아니라면 찾기 힘들다. 찾는다 해도 좁은 문으로 다수가 나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화재 당시 중앙로역은 연기가 발생하여 시야가 극도로 차단되어 있는 데다가 단전 상태였기 때문에 전등까지 모두 나가 문 손잡이를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 손전등 기능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당시엔 그런 기능이 없었고, 피처폰의 저열한 화면 밝기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구지하철공사의 거듭된 인력 감축 때문에 안전요원이 없었고, 역사 상주 직원이 4~5명뿐이었으며 안전 교육을 제대로 이수받지 못했다. 때문에 신속한 대피안내가 불가능했다.
다행히도 탈출 방법을 알고 있던 사람이 몇몇 객차에 타고 있었기에, 그나마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많은 인명피해가 난 1080열차의 경우 4호 객차에 타고 있던 승객 중에는 당시 철도청 직원이었던 권춘섭 씨가 사태를 직감하고 비상 코크를 취급하여 출입문을 수동개방하 인명피해를 줄일수 있었습니다.
결국 사건이 일어난지 약 3시간 이후인 오후 1시 38분경에 화재는 진압이 되었지만, 사망 192명, 실종 6명, 부상 151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이 참사의 여파로 약 8개월간 중앙로역뿐만 아니라 명덕역부터 신천역까지 6개 역의 영업이 중단되었으며, 전 구간이 영업을 재개할 때까지 1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때문에 약 1~2년 동안 대구 지하철의 이용객은 반 이상 감소했습니다. 또한 중앙로역 구조물 안전문제가 제기되어, 중앙네거리 국채보상로 교차점을 제외한 중앙대로 대구역 - 반월당 구간이 전면 통제됐습니다. 이로 인해 시내버스들은 계산오거리 혹은 봉산육거리로 우회 운행했으며, 402번같은 경우는 아예 북성로 구간을 포기하고 한때 한일극장으로 다녔습니다.
또한 이 사고로 열차는 완전히 불에 타 뼈대만 남았고 중앙로역 천장과 벽에 설치된 환풍기, 철길 바깥쪽 지붕들도 모두 녹아내려 역 구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사고 뒤 공개된 차량 내부는 시꺼먼 재와 철골만 남아있어 사고 당시의 참상을 잘 대변합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직접적인 화상보다는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했다고 추정되지만, 그렇다 해도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유해들은 형체도 못 알아볼 만큼 처참한 상태였습니다. 심지어 뼛가루조차 못 찾아 들고 있던 지팡이 하나만으로 사망이 인정되기도 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가스 노출에 의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가스 자체의 유독 성분도 문제지만 고열의 가스로 인해 피부와 호흡기에 상당한 화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설사 몸에 아무런 이상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 사람들이라 해도 후일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목숨이 왔다갔다 했던 당시의 충격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고 희생자들과 그에 관계된 유족들은 지금도 이 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으며 생존자들은 대부분 사고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충격으로 자살하거나 정신 이상이 발생한 사람, 울화병으로 사망에 이른 사람 등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아닌 대구 시민들 중에서도 지금도 대놓고 도시철도를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후 참사 1주기를 맞이하여 생존자들의 모습이 방송된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밤에도 불을 환하게 켜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는 사람이 있었고 한 초등학생의 경우 게임을 할 때는 히어로가 나와서 사람을 구하는 스파이더맨 게임만 하게 되었습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에서는 한 생존자 여성을 취재했는데, 방에 불에 탈 만한 재질(벽지라든지 장판 수납장)은 하나도 없고 맨 방바닥에서 생활하는 여성의 모습을 취재했습니다. 게다가 이 여성은 사고 이후 심한 정신질환까지 앓게 되는 바람에 가족들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들도 매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추가로 피의자 김대한은 당시 화상을 입어 달아나던 중 북구 노원동3가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범죄 사실이 드러나 검거, 구속되었습니다. 그는 마치 정신 이상처럼 굴려는 듯 진술이 뒤죽박죽이었으며,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사고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채질하는 거 아닌가 우려도 나왔지만 정신과 의사들의 판단에 의하면 정신이상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심신장애도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1심에서 현존전차방화치사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항소하여 2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상고는 포기하고 교도소 안에서도 횡설수설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가, 2004년 8월 30일 지병인 호흡 곤란과 뇌졸중으로 급사했습니다.
추가로 당시 1990년대 중후반부터 휴대 전화가 많은 대중들에게 보급되던 시기라 각종 매체들을 통해 희생자들이 휴대 전화를 통해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문자(대화)하던 내용들이 알려져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잘 잤어요. 여긴 날씨 맑음. 오늘 하루 보고 싶어도 쬐금만 참아요.」 -사고 발생 7분 전(오전 9시 46분) (사고 발생 9시 53분) 예비 신부 송혜정 씨가 예비 신랑 이호용 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좀 있으면 중앙로역을 지난다.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사고 발생 3분 전(오전 9시 50분) 서동민씨가 선배 송두수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지금 지하철인데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어. 저녁밥 맛있게 준비해 놓을 테니깐 오늘 빨리 퇴근해요!" -사고 발생 4분 전(오전 9시 49분) 김인옥 씨가 남편 이홍원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줘요...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 사고 발생 8분 후(오전 10시 01분) 통화기록 중
"지현아 나 죽어가고 있어. 나를 위해 기도해줘." -개신교 모임 강사 허현 씨가 강사 강지현 씨에게
"엄마가 여기 와도 못 들어와!" -오전 9시 54분(사고 발생 1분 후), 대학생 딸이 어머니 김귀순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아... 안 돼... 안 돼!"-오전 9시 58분(사고 발생 5분 후), 이현진 양이 어머니에게
"불이 났어. 나 먼저 하늘나라 간다." -김창제 씨가 부인에게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영아야, 정신 차려야 돼."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영아, 영아, 영아..."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영아야, 제발 엄마 얼굴을 떠올려 봐." "엄마 사랑해..." -장계순 씨와 딸 이선영 씨의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내용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뭐하노, 빨리 나온나." ,"못 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머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 -아들 박정순 씨가 노모 황점자 씨에게. 이날 그는 직장을 얻으러 가는 중이었다.
"열차에 불이 났다.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꿋꿋하게 살아라." -어머니 최금자 씨가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커야 해. 아빠가 미안해." ,"오늘 아침에 화내고 나와서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오빠 없어도 밥 꼬박꼬박 챙겨 먹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알겠냐. 그리고 기다리지마 나 안간다.","너 정떨어진다ㅋㅋ 우리 그냥 헤어지자 ㅋㅋ" -죽음을 예감한 한 남성이 자신이 죽은 걸 연인이 알면 슬퍼할까봐 일부러 기분 나쁘게 이별 메시지를 보낸 것.
이 사고 이후 대구광역시에서는 사고일인 매년 2월 18일에 추모 행사를 하고 있는데, 2020년 현재는 17주기가 되었습니다. 대구지하철 참사만 생각하면 정말 눈물만 납니다. 불을 지른 정신병자와 불이 났음에도 미숙한대처를 하던 대구지하철공사 사령실,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간 기관사.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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